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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역사
  1. 고려시대
    우리 나라의 원시시대의 술은 얻기 쉽고 만들기 쉬운 과실주가 성행 하였을 것이고 유목시대에는 유주(柚酒) 가, 그리고 농경시대에 늘어가면서 곡물을 이용한 곡주(穀酒)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전해 내려온 주류로는 크게 나누어 약주류(藥酒類), 고급주류 (高級酒類), 가향 주류(加香酒類), 과실주류(果實酒類), 이산주류(異酸 酒類), 속성주류(速成酒類), 탁주류(濁酒類), 감주류(甘酒類), 소주류(燒酎類), 합주류(合酒 類), 약소 주류(藥 燒酎類),약용주류(藥用 酒類) 등 이다.

    우리나라에는 술의 기원에 관한 신화는 없지만, 음주에 관한 전설은 고구려의주몽(晝夢) 신화에서 등장한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 의하면 주몽의 아 버지 해모수(解募漱)는 물을 마시게하니그녀들은 놀라 달아났으나,큰딸 유화(宥和)는 해모수에 잡혀 그 날 밤술에 취한 대 로 해모수와 잠자리를 같이하였다.

    술에 얽힌 하룻밤의 인연으로 유화가 잉태하여 낳은 아이가 바로 주몽이라 는전설이 있다. 위지(魏志) 동이전 (東夷傳)에 의하면 이땅의 영고(迎鼓), 동맹(東 盟), 무천(舞 天)등 군집 대회(群集 大會)에서는 밤낮으로 식음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음(飮)이란 물론 술 을 가리키는 것이다.이밖에 동제(洞祭) ,산제 (山祭), 기제 (忌祭), 각종 고사 (告祀), 명절 제사 등에서 도 같은 뜻으로 술을 음복 (飮福)함으로써 신인공음(新人共飮)의 결과를가져온다는 믿음 속에서 의식이 행하여졌다.
  2.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1년 (28)에 지주(旨酒) (旨, 맛좋은음식→지)란 말이 나온다. 지주는 맛좋은 술이다. 맛좋 은 술이 있었으면 맛이 나쁜 술도 있었을 것이다. 발효식품의 나라가 고구려이니 누 룩을 써서 만드는 여러가지 술들이 중국 못지 않게 빚어졌 겠지만 현재아무런 문헌도 남아있지 않다.
  3. 삼국&통일신라시대
    삼국 형성기에는 이미 전래 곡주가 그 바탕을 이어 왔으며 고구 려에서는 건국 초기(서기28년)에 지주(旨酒)를 빚어 한나라의 요동태수 를 물리쳤다는 기록과, '스스로 즐기며 발효 음식의 저 장을 즐긴다.'라는 고서기록으로 미루어 볼때 양조기술이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해석사(東海釋史)와 지봉유설에서는 당대(當代)의 시인 옥계생(玉溪生)은'한 잔신라주(新羅酒)의 기운이 새벽바람에 쉽게 사라질까 두렵구나'라는 시를 소개해 놓았다.당대 문인들 사이에 신라주의 인기가 자못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당시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의 술 빚기가 우리나라에 전파되고 동화되면서 독특한 술까지 빚게 된 것으로 짐작하며 실제로 일본 고사에는 우리에게서 배웠다고 기록되어 있다.일본의[고사기]에 보면 웅신천황때(서기270 ~312),백제의 수수거리가 새로운 방법으로 좋은 술을 빚어서 전하여 후세에 그를주신으로 모셨다고 하며, 우리나라 스님 보리(保利)형제가 새술의 창시자라고 하는데 이 새술이란 누룩을 써서창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삼국시대의 후기부터 통일 신라 시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우리의 술은 상상 이상으로 다채로웠고 중국에서까지 그 명성이 떨쳐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4.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송·원나라와 빈번 한 교류로 인하여 송·원시 대의 양주 법이 거의도입되었으며, 상류계층에 서 는 음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려 시대의 사원은 오늘날의 여 관업을 겸하고 있었 기 때문에 사원에서 술을 빚어 팔기도 하였다. 한편 궁중의 양 온서라는 부서에서 국가의 의식용 술을 빚 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도경, 기명(器皿), 와준(瓦遵)에서 고려의 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고려에는 찹쌀이 없어서 멥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송·원대를 통하여 중국에는 찹쌀술이 있었으나 고려 때는 중국 강남의 영향을 받 아 쌀로 술을 빚되 멥쌀을 쓰는 것이 서긍(徐兢)의 눈에 특이하게 비친 것 같다.

    또 고려도경에서는 술의 맛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깨는데 알코올 도수가 높고쉽게 취하고 빨리 깨는 술이 좋은 술의 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려의 술에 관한 구체적 제법에 관한 문헌은 없으나 중국의 덧술법을 배워서 한결 도수가 높아진 것이 아닌가한다.
  5. 고려시대의 대표주
    상용약주 청주(淸酒),유하주(流霞酒),방문주(方文酒),동동주,녹파주(綠波酒)
    특수고급약주 춘주(春酒),천일주(千日酒),신라주(新羅酒)
    향양주(香釀酒) 송주(誦呪),국화주,두견주,계향어주(桂香御酒),화주,죽엽주,포도주
    탁 주 백주(白酒),이화주
    약양주(藥釀酒) 오가피주,백자주(柏子酒),창포주,자주(煮酒),도소주(屠蘇酒)
    구황주(救荒酒) 천금주(千金酒 붉은나무인 천금목의 껍질로 빚는 술)
  6. 고려시대에 유입된 외래주
    행인자법주(杏仁煮法酒) 문종 32년(1078년) 송나라 황제가 보낸선물 중에 용봉차(龍鳳茶)와 행인자법주가 있었는데 중국의특급 법주를만들 때 행인(살구 씨의껍데기 속의 알맹이)을 넣어 빚은 듯하다.
    계향어주(桂香御酒) 예종 12년(1117년) 이자겸이 송나라에 진공사(進貢使)로 다녀오면서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계피향이 들어가는 황실의 특용주인 듯하다.
    화주(火酒) 숙종 3년(1103년)에 화주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과실주의 일종인 듯하다.
    마유주(馬乳酒) 고종 18년(1231년)에 몽고의 침입 당시 유입된 몽고인의 술이다.
    포도주 충렬왕 12년(1302년)에 원나라의 황제로부터 포도주가 우리 나라에 보내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상존주(上尊酒) 충선왕 때(1309년) 유입된 술로서 중국황실의 주도가 높은 청주이다.
    백주(白酒) 중국의 백주가 충렬왕 때 유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백주는 소주가 아닌 양조주로서 주도 높은 명약주인 듯하다.
    중산주(中山酒) 고려 중엽에 유입된 술인데 중양법(重釀法)으로 빚어지는 그 당시중국의 대표적인 청주류의 하나다.
    증류주(아라키주) 고려 후반기에 유입된 술로서 몽고의 침공과 함께 다량으로 유입되었던 술이다. 이 당시는 증류주가 고급주로 취급되었다.
  7. 조선시대
    조선 시대의 대표주 우리 나라 주조 사상 주목할 일은 조선 시대에 오면서 지금까지 유명주로 손꼽히는 술들이 이 시기에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술도 고급화 추세를 보여 제조 원료도 멥쌀위주에서 찹쌀로 바뀌고 발효 기술도 단사입에서 중양법으로 바뀌면서 양보다는 질 좋은 술들이 제조되는데 이때 양주로 손꼽히던 주품들은 삼해주, 백로주, 이화주, 부의주, 하향주, 춘주, 국화주 등이었다.

    특히 증류주는 국제화 단계로 발달하여 대마도를 통하여 일본, 중국 등에 수출이 빈번하였다.그 당시 우리 나라는 자가 제 조가 허가 되어 자유로이 발전되었으나, 중국에서는 관이 제조를 관장하게 됨에 따라 우 리 술의 수출이 용이하여 더욱 발전되었던 것 같다.

    조선후기로 접어 들면서 지방주가 전 성기를 맞이하는데 지방마다 비전(秘傳)되는 술들이 멋과 맛을 내면서 노출되기 시작한다. 이때의 명주로는 서울의 약산춘, 여산의 호산춘, 충 청의 노산춘, 평안의 벽향주,김천의청명주 등이 유명하였으며, 한편 소주에 각종약재를 응용한 술들이 새로 개발되었는데 전라, 황해도의 이강주, 전라의 죽력고가 유명하였다.

    이밖에 약주의 산패 방지를 목적으로 양조주(곡주)와 증류주(소주)를 혼합한 혼성 주인 과하주 등이 여름에도 마실 수 있는 술로서 개발되었는데 그 중 김천의 과하주가 유명하다.
    조선 시대 유입된 외래주
    조선시대에는 다채로운 술들이 개발되었고, 적지 않은 외래주가 공존하였다.
    천축주(天竺酒) 세조 8년(1462년) 우리 나라를 방문한 유구국(琉球國) 사신 이계손(李繼孫)을 통하여 천축주가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야자수 약을 발효 시켜 증류한 지금의 브랜드 같은 술이다.
    미인주(美人酒) 세조 8년에 천축주와 같이 들어온 술인데 유구국에서 미반 (米飯)에 주국(柱國)을 섞어 만든 술이다. 유구국에서는 제주로 쓰기 위하여 15세 처녀들이 밥을 씹어 만든다 하여 미인주라 하였다
    이황주(黃酒) 성종 19년(1488년)에 최박(催拍)의 표해록(漂海錄)에서 황주의 이름이 나오는데 중국 청주의 일종이다.
    섬라주(暹羅酒) 태국의 술인 섬라주가 [동의보감]에 소개되는데 두번 증류 한소주로, 독하게 소주를 고아 장내의 제충(除蟲)을 죽이는 약용의 목적을 쓰여 졌다.
    홍국주(紅麴酒) 16세기에 중국에서 유입된 술인데 동의보감에 소개된 흥국 누룩과 찹쌀로 빚은 청주 이다.
    동양주(東陽酒) 16세기 중국에서 유입된 술로 일반 양조법에 약재를 넣어 빚은 술이다.
    금화주(金華酒) 중국 남경에서 빚어졌던 술인데 16세기에 우리 나라에 유입 되었다. 일반 미곡주에다 울금(한약재의 하나)을 넣어 빚은 술이다.
    녹두주(綠豆酒) 조선시대 전 시기를 통하여 유입된 흔적이 보이는데 녹두누룩으로 빚 은 약주의 일종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예록춘(醴綠春)이 이 술을 모방하여 빚어진 듯하다.
    무술주(戊戌酒) 조선시대 중기부터 그 제법과 함께 유입된 술인데 일반 약주와 빚는 방 법은 같으나 물 대신 동물을 고아 그 즙으로 술을 빚었던 몸보신 주이다.
    조선 말기의 술 19세기 조선말에는 실학자들의 주질 향상 및 새로운 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이고 고 조되고 국제화 시대로 접어들게 됨에 따라 외국과의 정보 교환이 쉬워지면 서양주 문화 가 도입된다. 주세법이 생기기 이전에는 자가 제조 및 판매가 자유로 웠던 관계로 술 도 다양하였으며 제조하는 장소 또한 무수하였다.

    주세법 창설 당시 제조장 수는155,832장(場)이나 되었다. 그러나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가 전통향토주는 자취를 감추게 되고 신식 술이라는 획일 적인 술이 제조되기 시작한다.

    1920년을 기점으로 재래식 누룩에서 흑곡, 황곡의 배양균 을 사용하는 입국법이 활용 되어 전통주의 맥이 끊기게 되었다.
한국술의 역사
술의 본래 말은 ‘수블/수불’이었다. 고려시대의 「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화자(酉禾字), 「조선관역어(朝鮮館譯語)」에는 ‘수본(數本)’으로 되어 있고 조선시대 문헌에는 ‘수울’ 또는 ‘수을’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수블’이 ‘수울’을 거쳐서 술로 변한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술의 한자적 기원을 보면, 주(酒)자의 옛 글자는 ‘닭, 서쪽, 익을’을 뜻하는 유(酉)자이다. 유자는 밑이 뾰족한 항아리 상형문자에서 변천된 것으로 술의 침전물을 모으기 위해서 끝이 뾰족한 항아리에서 발효시켰던 것에서 유래했다. 그후 유자가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되어 삼수변이 붙게 된 것인데, 옛 글자에는 삼수변이 오른쪽에 붙어 있다.

보통 삼수변의 글자는 자전에서 찾을 때 수지부(水之部)를 보게 되지만, 주(酒)자는 유지부(酉之部)에 들어 있다. 酉는 ‘지지 유’, ‘익을 유’로 읽히는데, 원래 술항아리를 상형한 것으로 술을 뜻한다.

오늘날에는 술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자가 들어 있는 글자들 중에는 애초에 술과 관련되었던 글자가 많다. 술을 뜻하는 유(酉)가 변으로 들어간 모든 한자는 발효에 관한 광범위한 식품명이다.취(醉), 작(酌), 례(醴), 순(醇), 작(醋), 장(醬) 등이 그 예이다.

한국의 술문화는 역사가 매우 깊다. 문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인 마한(馬韓)시대부터 한 해의 풍성한 수확과 복을 기원하며 맑은 곡주를 빚어 조상께 먼저 바치고 춤과 노래와 술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한국에서는 농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술을 빚어 마셨고 모든 행사에는 술이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朱蒙)의 건국 전설에도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가 능신 연못가에서 하백의 세 딸을 취하려 할 때, 미리 술을 마련해 놓고 먹여 취하게 한 다음 수궁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세 처녀 중의 큰딸인 유화(柳花)와 인연을 맺어 주몽을 낳았다는 것이다.

또한 「위지(魏志)」 ‘고구려전’에 ‘선장양(善藏釀)’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고구려에서 술을 비롯한 발효제품이 많이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당나라 풍류객들 사이에는 신라주가 알려졌다고 하는데, 그 발효의 바탕은 누룩이었다. 누룩으로 술을 빚는 방법은 일본에도 전해져 일본술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삼국시대의 술은 발효원인 주국(酒麴)과 맥아(麥芽)로 빚어지는 주(酒)와 맥아로만 빚어지는 례(醴, 감주)의 두 가지였다. 이 가운데 내외에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술은 ‘고려주’와 ‘신라주’이다. 이 술들은 중국 송나라에 알려져 문인들의 찬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삼국시대에 나라 이름을 앞세운 술이 있었던 데 비해서, 고려시대에는 황금주(黃金酒), 백자주(栢子酒), 송주(松酒) 등 술의 재료와 특성을 나타내는 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술의 이름은 조선시대 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고 한다. 더구나 고려시대에는 증류주가 유입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한국의 술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와 원나라의 양조법이 도입되었고, 전래의 주류양조법이 발전되어 누룩의 종류나 주류제품이 다양해졌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문종 때 왕이 마시는 술은 양온서를 두어 빚었는데, 청주와 법주의 두 종류로 구분하여 질항아리에 넣고 명주로 봉하여 저장했다고 한다.

조선시대는 현재까지 유명주로 꼽히는 술이 정착한 시대이다. 이 시기에 술은 고급화 추세를 보여 제조원료도 멥쌀에서 찹쌀로 바뀌고 발효기술도 단(單)담금에서 중양법(重釀法)으로 바뀌었다. 이때 명주로 꼽힌 것이 삼해주(三亥酒), 이화주(梨花酒), 부의주(浮蟻酒), 하향주(河香酒), 춘주(春酒), 국화주 등이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지방주가 전성기를 맞았다. 지방마다 비전(秘傳)되는 술들이 맛과 멋을 내면서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에는 서울의 약산춘(藥山春), 여산의 호산춘(壺山春), 충청의 노산춘(魯山春), 평안의 벽향주(碧香酒), 김천의 청명주(淸明酒) 등이 명주로 손꼽혔다.

조선시대에는 적지 않은 외래주도 공존했다. 천축주(天竺酒), 미인주(美人酒), 황주(黃酒), 섬라주(暹羅酒), 녹두주(綠豆酒), 동양주(東陽酒), 금화주(金華酒), 무술주(茂戌酒), 계명주(鷄鳴酒), 정향주(程香酒) 등이 이 시기에 유입된 외래주이다.
한국의 전통술
한국의 전통술은 탁주, 약주, 소주로 대표된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제조방법으로 볼 때 탁주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탁주에서 재(滓)를 제거하여 약주가 되었으며, 이를 증류하여 소주가 만들어졌다.
  1. 탁 주
    오늘날에도 널리 애음되고 있는 막걸리인 탁주는 약주와 함께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도시의 서민층과 농민에게까지 널리 기호층을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의 토속주이다.탁주는 예로부터 자가제조로 애용되었기 때문에 각 가정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어져 그 맛도 다양한 것이 특징이었으며 대중주로서의 위치도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탁주는 지방방언으로 대포, 모주, 왕대포, 젓내기술(논산), 탁배기(제주), 탁주배기(부산), 탁쭈(경북)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삼국시대 이래 양조기술의 발달로 약주가 등장했지만, 탁주와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다.같은 원료를 사용해서 탁하게 빚을 수도 있고 맑게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려시대 이래로 대표적인 탁주는 이화주(梨花酒)였다.

    이 이름은 탁주용 누룩을 배꽃이 필 무렵에 만든 데에서 유래했으나 후세에 와서는 어느 때나 누룩을 만들었으므로 그 이름이 사라지고 말았다. 일반에 널리 보급된 탁주는 가장 소박하게 만들어진 술로서, 농주로 음용되어 왔다.탁주와 약주는 곡류와 기타 전분이 함유된 물료나 전분당, 국 및 물을 원료로 한다. 여기에서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제성했는가의 여부에 따라 탁주와 약주로 구분된다.
  2. 약 주
    약주는 탁주의 숙성이 거의 끝날 때쯤, 술독 위에 맑게 뜨는 액체 속에 싸리나 대오리로 둥글고 깊게 통같이 만든 ‘용수’를 박아 맑은 액체만 떠낸 것이다. 약주란 원래 중국에서는 약으로 쓰이는 술이라는 뜻이지만 우여 밑술을 제조할 경우가 있을 때 앞의 수국 밑술제조법에 준하여 제조한다.
술덧
술덧이란 밑술, 입국, 곡자 또는 효소제와 괘미(掛米 : 덧밥)를 담금급수에 첨가한 전체 물료를 말하며 입국,곡자,효소제 등의 효소작용으로 증미를 당화시킴과 동시에 효소의 왕성한 발육에 따라 주정발효를 영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술덧 제조공정
  1. 담금배합
    담금배합은 기술면에서 지장이 없는 한 복잡성을 피하여 간소하게 작성하는 것이 편리하다. 담금배합의 작성요령을 보면, 용기 대비 담금원료의 비율(味物比率)은 소맥분, 쌀 30% 이상, 잡곡 32% 이상이며, 쌀에 대한 담금급수비율은 소맥분 170% 이하, 쌀 160% 이하이며, 밑술미(酒母米) 사용비율은 밑술미 2-3%(숙성밑술량 기준 약 5-7%)이다.
    1단 담금 효모배양을 목적으로 하며 밑술의 2단계 배양이라고 할 수 있다. 입국과 물을 섞은 다음 숙성밑술을 첨가하여 30℃ 이하에서 20-48시간 발효시킨다. 1단 담금의 목적은 입국이 분비하는 각종 효소 및 산의 침출, 입국 자체의 용해당화(溶解糖化), 안전한 상태에서의 효모증식 등이다.
    2단 담금 주정발효를 목적으로 하여 1단 담금 물료에 덧밥과 물 그리고 발효제(곡자, 정제효소제·조효소제)를 사용비율에 따라 첨가한 후 32℃ 이하에서 소맥분은 48시간 전후, 쌀 72-120시간 정도로 발효시킨다. 발효온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감패 또는 산패의 위험이 있으므로 냉각기를 이용하여 품온을 조절해야 한다. 감산패를 예방하려면 강한 밑술의 사용, 저온에서 본담금 실시, 최고품 32℃ 이하 억제 등이 필요하다.
    숙성과 제성 최고 품온에 도달한 술덧은 품온이 그대로 장시간 지속되었다가 서서히 내려가 본담금으로부터 탁술덧은 2-3일(소맥분), 3-5일(백미), 약술덧은 6-7일만에 숙성되며 이때 품온은 실온에 가까워진다. 탁주의 맛은 감(甘 : 단맛), 산(酸 : 신맛), 신(辛 : 매운맛), 고(苦 : 쓴맛), 삽(澁 : 텁텁한 맛), 지(旨 : 감칠 맛), 함(鹹 : 짠맛) 등과 색택(色澤), 향취, 침강도 및 혼탁도 등이 잘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이 균형이 주질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약술덧은 충분히 성숙시킨 후에 후수를 첨가하여 잠시 방치한 후 압착·제성한다. 탁술덧은 근래에 이르러 일반대중의 기호에 따라 지방마다 약간씩 제성시기가 다른 경향이 있다. 탁주제성은 체 또는 탁주제성기 등을 사용하여 후수를 가하면서 제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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